대체 언제 어른이 될 수 있는 걸까요?

애착유형 검사와 불안정한 유형의 나(2).

한여린 2022. 9. 14. 19:21

어디선가 그런 문장을 본 적 있다. 변화하려고 한다면 주변 환경부터 바꿔야 한다는 문장을.

 

내가 얼마나 망가진 건지 별 일이 없는데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부터 울고 들어오는 일이 잦아졌다. 신체적으로 다 큰 어른이 여름의 사람 많은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창피했지만 수 없이 울었다. 별거 아닌 책 속의 문장이 나를 울렸고, 가사 없는 클래식 음악이 내 감성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에 하자가 생긴 것 같았다. 더는 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잘 컨트롤할 자신이 없었다.

너무 살고 싶어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정에 없던 퇴사에 관한 내용을 내질렀다. 여기서 더 일을 하다간 극심한 우울감에 죽어버릴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닥쳤다. 너무 살고 싶어서, 평범한 삶이 간절해서 회사에 그만두겠다고 말을 했다. 표면적인 사유는 건강악화로 인한 퇴사.

 

 

흔히 회사 생활에는 주기적으로 고비가 온다고 한다. 입사 3개월 차, 입사 1년 차, 입사 3년 차.... 나는 그 입사 3년 차였다.

 

일단 내가 정말 퇴사를 하고 싶은 건지에 관해 먼저 점검을 하였다.

모든 직장인들이 매일 출근하기를 싫어하듯 나도 습관처럼 내뱉던 "일하기 싫다.", "퇴사하고 싶다."이런 생각이 충동적으로 강하게 들었던 건 아닌지, 현실적으로 놓고 봤을 때 내가 이 시점에서 퇴사를 결정하는 것이 과연 맞을까 고민이 됐다.

나는 생각보다 겁쟁이이며, 엄청 현실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관해서는 신중히 검토해봤다.

24년까지 1억 원 모으기로 한 내 계획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 들어가고 있는 무조건적으로 넣어야 하는 적금은 무슨 돈으로 어떻게 넣을 것인지 등에 관해서 끊임없이 고민을 해봤다. 일단 정신과에 다니면서 들어가는 진료비+치료비+검사비도 적은 돈이 아니었기 때문에 앞길이 막막했다.

 

그럼에도 나는 퇴사를 해야 한다고 결정을 내렸다.

당장 월급을 위해서 살기에는 내 몸과 마음이 견딜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고, 정말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지금 내게 가장 해가 되는 환경인 회사라는 주변 환경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2-3일에 한 번씩 울며 들어오는 내가 너무 불쌍해서 그런 나를 더는 방관 할 수 없었다.

 

일단 같이 살고 있는 가족들에게 내 퇴사 결심을 알렸다. 내가 왜 퇴사라는 결심을 했는지 상당히 오래 설득시켰다. 나는 이러한 이유로 퇴사를 생각하고 있고, 언제 까지만 근무를 하고 더는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사적인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우리 가족은 따뜻하고 다정하게 말하는 유형의 사람들은 아니다. 이때의 나는 벼랑 끝에 몰려있는 것 같았다.

출근 시간에는 그나마 좀 견딜만했지만 퇴근 후 사람 많은 지하철 사람들 속에 갇혀서 집으로 향하는 게 끔찍했고, 감정은 내 통제를 벗어났고 언제 숨이 막혀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감이 심해서 늘 조바심이 있었다.

 

가장 불안정한 시기의 나를 크게 울린 사람은 다름 아닌 내 이종사촌동생이다.

21년도 겨울, 병원 실습 때문에 우리 집에서 몇 개월 지냈던 동생이 엄마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건지 연락이 별로 없던 아이인데 평소보다 30분 이른 퇴근을 하고 집에 가는 길에 느닷없이 이 아이에게 연락이 왔다. 이 날은 여전히 회사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와 우울함에 허우적거리며 친구와 같이 퇴근하고 있는 길이였다. 아무리 나와 친한 친구여도 나의 힘듦과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즐거워야 할 퇴근길 마저 내 감정으로 인해 이 아이의 감정까지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속에서 토할 듯 울렁울렁거려서 게워내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삼키고 달래며 집으로 가던 지하철. 친구가 먼저 내리고 이런 기분에 더 잠식되기 싫었던 나는 제발 기분 전환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유튜브 어플을 열어서 시시껄렁한 웃음을 찾으려고 아무 예능이나 틀었다. 영상이 재생된 지 5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동생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었다. 

 

언니 잘 지내? 이모한테 언니 요즘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다는 소리 전해 들었어. 내가 조만간 경기도 내려갈 테니까 언니 딱 기다려! 가서 언니 맛있는 거 사줄게. 나는 무조건 언니 편이니까 조금만 더 힘내. 항상 응원하고 있어. 파이팅이야!!

메시지가 왔다는 알림이 뜨면서 동생의 메시지가 미리보기가 됐는데 때마침 지하철은 지하구간을 지나 지상구간으로 바뀌었다.

어둠을 뚫고 나온 지하철 창문을 통과한 여름의 태양빛 아래 그대로 노출된 나는 그만 창피한지도 모르고 펑펑 울고 말았다. 나랑 8살이나 차이나는 조그마한 아이가 나를 위로하겠다고 건네는 문장이 너무 따스했다. 100일이 갓 넘었을 때의 동생의 모습도 생각나고 이 아이가 어느덧 자라서 언니를 위로할 줄 아는 따뜻한 사람으로 성장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에게 뜯어먹을게 뭐 있다고 나는 이렇게 어른스럽지 못하게 아파하고 있나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껏 부끄러워할 겨를 없이 너무 감동받아서 더 눈물이 흘렀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 말이었구나.

앞으로는 어떡할 건지, 어떤 계획을 세울지 같이 해결 방안에 대해 의논하고 고민하는 게 아니라 그냥 무조건적으로 내 편을 들어주고 날 응원해주는 그런 말이 간절하게 듣고 싶었던 거구나 하는 깨달음.

 

내 마음에 너무 와닿았던 건지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다. 여름이라 하필 일몰 시간도 늦는데 빨리 퇴근한 나는 그렇게 지하철 지상구간에서 20분 내내 서럽게 우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차마 동생의 메시지에 뭐라고 고마움을 담아 전달해야 할지 몰라서 답장하지 못했다. 그날은 온라인 독서모임도 있는 날이어서 집으로 오자마자 살기 위해 꾸역꾸역 식사를 하고, 양치를 하고 그렇게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독서모임이 다 끝난 후 겨우 사촌동생에게 연락을 했다. 너의 메시지는 실시간으로 확인했었지만 흘러넘치는 감정을 정리하느라 바로 답장하지 못했고, 제대로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서 섣부르게 대답하지 않았다고. 너의 연락을 무시한 게 아니라고 말을 건넸다.

그날 동생과의 통화에서 나는 또다시 울었고, 수화기 너머의 동생도 같이 울었다. 내가 혼자 울지 않도록 같이 울어주는 동생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고맙다는 말 말고 더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를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