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언제 어른이 될 수 있는 걸까요?

나를 향한 매질에 남는 게 뭘까?

한여린 2022. 12. 15. 23:22

시험이 23일 앞으로 다가왔다.

하루하루 D day가 줄어들수록 불안함이 마구마구 증폭되고 있다.

생각해보면 학교 다닐때는 여러 과목을 한 달 전부터 준비해서 시험을 봤는데, 난 이미 2달을 봤는데 왜 이렇게까지 초조해하면서 안절부절못하는지 모르겠다.

 

진짜 내 모든걸 다 태웠다고 볼 수는 없지만 내가 여태까지 살아온 삶 중에서는 가장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이렇게 자신에게 혹독하게 구는 걸까? 스스로를 안아주지 않고 늘 혹독하게 채찍질만 하다가 문득 '나를 향한 매질에 남는 게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는 건 늘 처참한 흉터뿐인데 왜 늘 손에서 내려놓지 못할까? 왜 이렇게까지 스스로를 매질하는 걸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반드시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가정을 하면 좀 충동적이고 자신에게 너그러운 사람이였으면 좋겠다고.

왜 나는 늘 나를 통제하려 들고, 많은 변수를 만들려고 하지 않는지...

최소한만 넣고 최대한을 완벽하게 뽑아내려고 하다보니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해지는 것 같다.

 

 

최근에 가장 친한 친구가 힘들어서 대부분 잠을 자는데 시간을 쏟는다길래 예전에 읽었던 책의 일부를 친구에게 보내줬다.

 


 

여행이란 나를 용서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은 그 기간 동안 평소 나에게 못해줬던 것, 스스로 누리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충실한 보상을 해주고, 쉽게 허락되지 않았던 경험들을 과감 없이 느껴볼 수 있는 기회도 가지게 된다.
여행에서는 많은 것들이 추억이라는 이름 아래 곧잘 용서되곤 한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왜냐하면 나는 처음이잖아.”
곰곰이 들여다보면 그러한 마음가짐들은 참으로 대견스러운 것이다. 
그건 평소에는 좀처럼 품을 수 없었던 너그러운 마음일 테니까.
“괜찮아. 이건 여행이니까.”
어째서 그런 느낌들은 여행 동안에만 아무렇지도 않게 허락되는 걸까?
평소 같았으면 며칠을 후회하고, 스스로를 비난했을 사안들임에도 여행에선 대개 쉽게 용서되어 버리곤 했다.

여행은 그간의 나를 용서하고 다시금 나를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어긋나 있던 부분들을 새로 조율해주고, 잊혀져 있던 마음가짐들을 충분히 일깨워 주곤 한다.
그 느낌들은 대부분 일상의 무게에 곧잘 가라앉곤 하였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태연하게 말할 수 있겠다.
길을 잘못 들어서도, 때에 따라 실수를 하고, 내 능력과는 관계없이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아도, 자신을 너무 나무랄 필요는 없다고...

 

-시간의 모서리中-

 


 

너무 조급해하지 말아야겠다.

이것도 일종의 여행이라는 생각을 해야겠다.

 

심지어 내가 공부하는 분야는 전공도 아니고 아예 생판 모르는 분야잖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왜냐하면 나는 처음이잖아!"

 

오늘은 스스로를 다독이다 잠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