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울잖아.
그녀를 알아온지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났다.
오늘 탈이난 속을 부여잡고 그녀를 만났다.
상당히 굳은 표정의 그녀는 내게 인사도 채 건네지 못하고 본인이 지금 정신이 없다며 내게 알아서 식사할 것을 권했다.
"(그가) 빚이 N억이래."
그녀가 파리해진 얼굴로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
어조는 낮고 차분했지만 이미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어떤 위로도 건네기 힘들었고, 무슨 말을 해야 그녀에게 위로가 될까 말을 골라봤지만 결국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그는 항상 그녀를 돈 문제로 힘들게 했다고 한다.
그녀에게 상의도 하지 않고 덥석 덥석 돈을 빌려주거나, 여기저기 투자해서(치밀한 투자도 아닌, 늘 망하는 구멍 난 투자만) 그녀에게 항상 같이 빚에 허덕이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돈 문제라면 신물이 난다고 그녀는 과거를 회상하며 늘 짙은 피로감에 젖었었다. 절망적이었고 항상 끝나지 않는 어두운 터널 속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고.
한 때는 그냥 이대로 자살해버릴까 생각이 들 정도로 괴로웠었다고.
웃기게도 그녀가 그녀를 늘 힘들게 만들었던 그에게서 조금 자유로워진 것은 그가 그녀를 떠나면서부터다.
법적으로 떠난 건 아니지만 자신은 어떤 간섭도 받고 싶지 않다며 자유를 찾아 떠나서 혼자 살 테니 이제 그만 그를 내버려달라고 했다.
사실 그 이야기는 부탁이 아닌 통보였다. 그녀가 더 이상 그의 인생에 간섭하지 말아 달라는 일방적인 선고.
그렇게 그녀는 그와 8년을 따로 살게 됐고, 그녀가 그에 대해 물어봐도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로 알려주지 않고 지냈다고 한다. 왜 당신은 내게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간섭하냐며 알아서 할 테니 내게서 신경을 끄라는 날카로운 감정들이 칼이 되어 늘 그녀에게 돌아왔다고 한다.
8년을 같은 집 같은 방에서 살지 않아도 그는 그녀에게 연락할 때마다 늘 날카롭게 벼려진 말을 하거나 독 같은 말을 하여 그녀를 조금씩 조금씩 잠식시켰다.
그러면 그녀는 그를 끊어내고 건강하고 잘 살았을까? 생각보다 그렇지도 못했다.
자유롭게 살겠다는 그가 늘 스트레스를 받아하고, 아파하며 궁상을 떨어서 차라리 다시 같이 살자고 말했지만 그는 그 말을 또 거절했다. 그녀와 같이 살지 못하겠다고, 자신의 자유를 구속하지 말라며. 그렇게 계속해서 선을 그었다.
그렇다고 그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고 일을 하러 나가는 시기들도 상당했어서 그녀는 당연히 그가 그럭저럭 먹고살만한가 보다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본인의 기분이 내킬 때, 혹은 본인의 약속이 그녀의 집 근처일 때 등등 그가 필요할 때마다 그녀에게서 사소한 것을 가져갔다.
그리고 그가 8년 동안 그녀 모르게 가려오고, 숨겨온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그가) 빚이 N억이래."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핸드폰을 붙잡으며 말을 하는 그녀는 분명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 눈에 우는 얼굴이 너무 선명히 보였다. 그녀의 비명이 귓가에 울린다.
못난 당신 때문에 내 소중한 그녀가 울잖아.
그녀가 절망하잖아.
당신이 뭔데 그녀를 또다시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 넣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