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린 2021. 4. 16. 21:35

4.16의 기억.

 

그때를 회상해보자면 20대 초반의 어느 날이었을 겁니다.

저는 그때 당시 병원에서 실습을 하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평소처럼 혈압을 측정하는데 아침나절 병실이 참 소란스러웠습니다. 왜 이리도 소란스러운가 하니 환자들이 배가 침몰했다고 입을 모아서 얘기를 했습니다.

병실 가운데 달려있는 작은 티브이 화면 속의 뉴스에서는 반쯤 기울어진 큰 배와 [전원 구조]라는 내용의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제 모교인 단원고등학교 아이들이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다가 그런 사고가 났다는 뉴스 가요.

그래도 전원 구조됐다고 하길래 안심하고 마저 해야 할 일들을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뉴스 내용이 점차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안 좋은 쪽으로요. 그렇게 내 동생보다도 더 어린아이들이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을 때 저는 단원병원에서 실습생 신분으로 '이건 끔찍한 꿈일 거야....' 하는 생각을 얼핏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단원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늘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머릿속에 행복했던 기억들이 휘몰아치면서, 좋아했던 선생님들, 친구들, 매일 아침마다 헥헥거리며 올라가던 학교 입구 등등... 3년간 쌓아온 추억들이 주마등 스치듯 흘러가면서 손이 떨리더라고요.

 

과연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러기엔 너무 죄송스러운 마음이지만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은 희생되지 않았음에 덜 무너지면서 참담한 마음을 숨기기 힘들었습니다. 16일이 며칠 지난 어느 날 오랜만에 학교를 방문했는데 학교 주변이 온통 노란 리본으로 가을도 아닌데 노랗게 은행잎 떨어진 듯 물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울다가 돌아서 나온 기억이 납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일 때에도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갔었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비용이 적게 드는 배를 타고 갈 것인지, 비용이 좀 더 발생하더라도 비행기를 타고 갈 것인지 설문조사를 했었는데 그때는 다수의 의견이 비행기를 타자고 나와서 나는 이런 일을 피할 수 있었던 건 아닌지.. 하는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학교를 입학할 당시에는 고등학교를 성적순으로 가는 비평준화 지역이었다가, 졸업하고 나서 얼마 안 된 시기에 지역이 고교 평준화로 바뀌면서 상대적으로 경제적으로 좀 더 빠듯한 친구들이 학교에 많이 가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배를 타고 가자는 의견이 더 많아서 그날 세월호를 타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에도 언급을 했었는지 기억이 정확히 나지 않지만 저는 물이라면 하도 많이 익사할 뻔해서 참 싫어하는데 이런 사건까지 터지니 더더욱 물이 싫어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물을 더 싫어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19년 5월 말의 부다페스트에서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배를 탈까 하다가 세월호도 생각나고 날씨도 좋지 않아서 일행이 배를 타자는데도 만류하고 그저 멀리 서서 하염없이 떨어지는 빗줄기만 감상하며 숙소로 돌아와서 잠을 잤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자다가 살아있냐는 연락이 쏟아졌는데 이유인즉슨, 다뉴브강에서 유람선 사고가 나서 한국 사람들이 실종됐다는 이유였지요.

 

이번에는 지난번 사고보다 더 현실성 있게 죽음을 스쳤다는 생각에 아찔해하면서 우울한 마음으로 다시 잠들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여전히 날이 흐린 사고 다음날, 사람들을 먹어치우고 그 사람들의 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생채기를 낸 다뉴브 강변을 걸으면서 착잡한 마음을 또다시 감추지 못했던 기억들이 납니다.

 

저는 정말 물이 싫습니다. 배가 정말 싫습니다. 매년 이맘때쯤 슬픔에 빠졌던 이 도시 분위기가 생각나서 참 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