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는 언제나 맨얼굴이 된다.
나는 미술 에세이가 좋다. 그래서 미술 에세이는 비전공자인 일반인치고 제법 읽었다고 자부한다.
아무튼 내가 읽어본 미술 에세이 중에 가장 마음에 든 책이다.
최근에 실장님이 책 좀 추천해달라고 했는데 단연코 이 책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실장님 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정말 많이 추천하고 다녔다. 특히 나랑 정말 친한 언니도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더더욱 이 책을 추천했다.
책 좀 빌려달라고 했는데 아직 빌려주지는 않았지만....
이 책은 '그림'이 메인은 아니고 곁가지 느낌이다. 물론 작가도 다른 그림 에세이처럼 화가의 삶이나 그림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을 쓴 목적이 아니었고, 나도 그림 에세이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도 그런 것은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만족했다. 학술적인 느낌은 거의 없는 이세라 씨의 그림이 곁들여진 에세이라고 생각함이 옳다.
작가는 요즘 사회에서 소위 말하는 '프로 불편러'이다.
나는 이 '프로 불편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는 단언컨대 사람들이 무언가를 볼 때 다각도에서 생각하며 불편해야 할 것들은 충분히 불편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저 '프로 불편러'라는 단어가 그런 사람들을 예민하다고 낮잡아 이르는 말이겠지만 요즘 사람들이 차별이 너무 익숙해져서, 혹은 도덕성이 너무 낮아져서, 윤리의식이 너무 떨어져서 불편해야 할 것들을 불편해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면서 "너,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도 참 여러 각도에서 생각을 해보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작가는 생각지도 못 했던 부분까지도 불편하게 생각하면서 나를 반성하게 하고 새로이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 책은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참 많아지게 하고 책을 더 탐구하게 된다.
어지간히 머리가 텅텅 비어 있는 머리가 꽃밭인 사람이 아니라면 이 책을 읽고 마음이 사뭇 복잡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상시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끄집어 올려서 다시금 생각해보고 독자를 반성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다면 책을 읽기 전보다 더 성숙해진 내면세계를 갖게 될 것이라고 자신할 수 있다.
얼마 전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페미니즘에 부정적이지는 않지만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개탄스럽다고. 인생을 열심히 살지도 않으면서 불평불만만 한가득 늘어놓는 것은 좋지 않으며, 문제에 대해서 말하려면 반드시 '대안'이 있어야 한다고. 최대한 침착하고 논리적으로 그의 주장에 답하려 했으나, 자꾸만 가슴이 뜨거워지고 감정이 격양되는 게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 되물었다. 여성이 자신이 겪은 차별이나 부당함을 이야기하려면 '인생을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야'한다는 자격요건이 붙는 거냐고. 그렇다면 '열심히 산다'의 기준은 무엇이고, 누가 판단하는 거냐고.'
그 사람의 말은 여러 가지로 내게 생각할 거리를 안겨줬다. 먼저 '페미니즘에 부정적이지는 않지만'이라는 전제가 붙는 경우 말과는 달리 그것을 고깝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불평불만'이라는 단어가 이를 증면한다. 그에게 페미니스트들의 발언은 정당한 권리에 대한 주장이라기보다 비생산적인 말들을 감정적으로 늘어놓는 행위, 그러니까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로 인식되고 있었다. 사실 침묵을 깨고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야말로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말이다.
거의 한쪽을 통으로 옮긴 것 같은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 말이다.
나는 그래도 글을 쓰는 건 어느 정도 하겠지만 말은 잘하는 편이 아니고 흥분할수록 말이 헛 나오는 편이어서 누군가가 나에게 저런 말을 했다면 확 열이 받아서 생각했던 것만큼의 말을 못 하고 울화통 터져할 것 같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남동생과 내가 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동생은 완전 소설 속의 일이며 현실과는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해서 언쟁이 생겼었던 것도 생각나면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런 문제뿐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이야기를 작가가 풀어내면서 그녀의 시선을 활자를 통해 내게 내밀히 보여준다.
사실 책을 읽는 도중에는 독서평으로 쓰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는데 책을 완독 한 지 2주 정도가 되어가는 지금은 그 스쳐 지나간 생각들이 하나하나 다 떠오르지는 않는다.
사실 나는 한 번 본 드라마, 영화, 책, 공연 등을 다시 보는 일이 극히 드문 편인데 (이미 본 것이기 때문에 다시 보는데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충분히 다시 읽을만한 값어치가 있는 책이다.
2021 한여린의 독서 어워즈 에세이 분야 대상인 책이다.
끝으로 조금만 더 덧붙이자면 작가는 좌절하지 않고 늘 앞을 보고 전진하고 나아가는 멋진 사람이다. 나도 이런 생각과 가치관, 삶의 태도를 갖고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책을 읽으면서 많이 했다.
이렇게 좋은 글을 쓴 작가에게 감사하며, 이런 책을 골라서 읽은 나에게도 참 감사한 책이다. 앞으로도 쭉 건필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