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쇼코의 미소.

한여린 2021. 11. 14. 19:46

9월에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을 읽고 작가에게 홀딱 반해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볼까 하고 있었다.

올해 어느 가을날의 점심시간에 책에 관해서 얘기를 하다가 성연 선생님이 마침 쇼코의 미소책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길래 빌려 달라고 해서 읽은 책이다.
이 책을 빌려온 것이 상당히 오래됐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한 달이 지나서야 읽고 돌려줬다.

단편 소설을 여러 개 묶어서 낸 소설인데 나는 주가 되는 쇼코의 미소는 정말 별 생각 없이 읽었고, ‘한지와 영주그리고 씬짜오, 씬짜오가 가장 강렬하게 인상에 남았다.

 


 

[한지와 영주]

 

1인칭 화자인 영주이다. 영주는 지질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인데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을 다 일시 정지시켜버리고 프랑스로 떠나버린다머리야…. 여기서부터 벌써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렇게 인생의 이력에 하등 도움 안 될 일을 일주일도 아닌 두 달 가까이하는데 아무리 소설 속이지만 진심으로 경악해버리고 말았다. MBTI과몰입러로써 말하자면 영주의 MBTIISFP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을 보면서 너무 이해가 안 돼 미쳐버릴 것 같은 포인트들을 열거하자면

 

첫째.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나서서 다가가는 유형의 인물이 아니다.
, 이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외향적인 사람도 있고, 내향적인 사람도 있으니까. 그래도 내가 관심 있는 사람이고 더 가까워지고 싶다면 용기 내서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사람들은 관심법을 하지도 않으며, 어지간히 눈치가 빠르지 않는 이상 이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슨 의도인지 알기 어렵다. 나는 관계는 뭐든 얘기를 하고 솔직하게 말을 하는 것이 그 관계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부당하다고 느끼면서도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끈질김을 보이지 않았다. 언젠간 그 사람을 잃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비겁함.
상대는 단 한 번도 영주가 싫다고 말을 하거나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거나 혹은 그런 언행을 한 적 없는데 영주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아주 혼자 삽질했다. 왜 현재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중인데 계속 언젠간 넌 날 떠날 거야.’와 비슷한 뉘앙스의 생각을 끊임없이 하는지 너무 답답하다. 이런 부정적인 영주의 생각들이 모여 한지에게도 전달된 것 아닐까? 물론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어도 간접적으로도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내 생각에는 영주가 한지에게 그런 부정적인 신호와 뉘앙스를 끊임없이 풍겼다고 생각한다. 나는 상대방이 좋은데 상대방이 언젠가 있을 계속 우리 관계의 단절을 생각하고 얘기한다면 더 이상 그 관계는 지속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찬란한 지금, 현재에 대해 집중하고 앞으로의 관계에 대해 좋은 생각만 하기에도 인생은 너무 찰나라고 생각한다.

 

셋째.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부정하며 놓아버리는 한심함.
일단 영주는 자기 자신에 대해 뒤돌아볼 필요가 필요한 수준이 아닌 절실한 수준의 인물이다. 자기 객관화가 너무 안 되어있고, 주변에서 한지와 영주가 가장 친해 보인다고 했다면, 더군다나 한지라는 인물은 원래 사람에게 일정 수준 이상으로 더 다가오지 않고 벽을 치는 사람인데 내게는 그렇지 않다? 그러면 내가 그렇게 믿고 있지 않아도 타인의 평가만으로도 충분히 더 용기를 내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영주는 끝내 그와의 관계를 이어나간 시간 속 좋았던 추억만 붙들고 살 요량으로 끝끝내 꼬인 관계를 풀지 않고 사실상 다시는 못 볼 한지를 그대로 보낸다.

 

넷째. 충동적이고 책임감이 없다.
초반에도 언급했지만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책 따위는 가져다 버려버린 영주는 딱히 종교가 있지도 않은 것 같은데 훌쩍 떠난다. 자신이 하고 있던 학업이나, 주변 사람들의 기대, 타인과의 관계 등등 한국에서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았을 텐데 그냥 다 훌훌 버리고 프랑스로 도망친다. 탈주(脫走). 이 보다 영주의 인생을 더 잘 설명해주는 단어가 있을까?

소설 속 일이지만 너무 혈압 올라

 

정말 내 기준에선 총체적 난국인 캐릭터다. 도대체 인생을 왜 이따위로 살지? 진짜 쓰레기처럼 산다고 생각했다. 내가 제일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전형적인 군상. 내 주변에 이런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먼저 연락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내가 조언을 한다고 내 말을 귀담아들을 것 같지도 않다. 내 시간과 감정을 이런 사람에게 쏟는다는 것이 너무 가치 없고 시간이 아깝다. 물론 이런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감정 소모 때문에 피곤할 것이라 예상된다.

 


 

[씬짜오, 씬짜오]

 

양가감정을 느꼈다. 타국으로 이민 간 두 가정이 서로 의지하며 친밀하게 지내다가 풀지 못한 역사적 응어리로 인해 결국엔 멀어지는 이야기. 그리고 전쟁 앞에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척하는 것이 얼마나 역겨운 일인지.

 

전쟁은 끔찍한 일이다. 전쟁으로 인해 반드시 죄 없는 희생자가 나오기 때문에 반드시 피해야 할 일이다.

한국과 일본이 감정이, 관계가 나쁜 이유가 무엇인가? 일본은 수많은 전쟁을 일으키고 아직도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전쟁 이유가 정당하다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래서 전쟁의 피해국가인 한국이 그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베트남전에 대해서는 미안한 감정 없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주인공이 얼마나 충격적이고 아빠에게 실망스러웠을까.

 

전쟁은 모두를 할퀴고 지나간다.

전쟁이 지나간 자리엔 회복하기 힘들정도로 큰 상처가 남아서 사람들은 그 상처를 돌보기 어렵다.

속절없이 흘러버린 시간속에 모두가 일상을 회복한 듯 보이지만 전쟁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아픔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