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엄마가 새로운 직장에 다니면서 겪는 인간관계의 어려움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다.
나보다 나이가 두 배 가까이 많은 엄마도 여전히 인간 관계때문에 어려움을 겪곤 하는데, 내가 겪고 있는 이 어려움이 도대체 언제 끝날까?
얼마나 나이를 많이 먹어야 인관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인간이 더이상 인간에 대해 기대하는 게 없을 때까지 사람들은 타인으로 인해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끝없이 기뻐하고 슬퍼하고 아파하다가 숨이 멈춰야만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을 드디어 안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이 얘기를 나누는 난 나보다 세 살이 어린 친한 친구와 와인을 얼큰하게 마신 상태로 우리가 왜 지금과 같은 관계가 됐을까에 관해 고찰했었다.
이 친구와 나는 전 직장의 다른팀 직원이었는데 사실 뚜렷한 접점은 없었는데, 어느 화창 하던 날 다른 팀과 섞여서 밥 먹으러 가는 길에 '향신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이 친구가 본인이 향신료를 정말 좋아한다고 했었다.
빈 말로 "엇! 그러면 다음에 한 번 향신료 진하게 쓰는 음식 같이 먹으러 가요."라는 말이 나왔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친구와 나는 서울대 입구역 근처의 한 훠궈 집에 둘이 어색하게 앉아있었다.
막상 대화를 많이 나눠보지 않았던 다른 팀 팀원과 식사를 하려니 둘 다 어색해하며 내가 눈치를 보며 주문했던 맥주 한 병을 나눠 마시고 얼렁뚱땅 훠궈를 먹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어색한 사적인 식사가 있은 후 둘 다 왜인지는 기억 못 하지만 정신차리고 보니 같이 여행을 몇 번이나 가고, 틈만 나면 일이 끝나고 같이 밥을 먹으러 갔다.
어떻게 친해진건지 사실 둘 다 그 과정을 잘 기억 못 한다.
와인을 마시면서 우리는 어떻게 친해진 건지 서로 신기해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둘 다 자연스럽게 열린 마음으로 서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친해진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이가 어릴때는 학교라는 세계가 거의 변동 없이 흘러가서 무척 제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 사회에 무조건 적응하고 속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나와 좀 맞지가 않더라도 참고 친하게 지내거나, 아직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과 잘 맞는지, 내가 어떤 취향인지 잘 몰라서 서로 삐걱거리면서 맞춰 나가게 된다.
하지만 사회로 나오면 많은 경험들을 하며 내가 어떤 성격의 사람인지, 어떤 사람과 내가 잘 맞았는지,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경험이나 활동 등을 좋아하는지 다양한 취향과 경험이 쌓여있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더 어렵다.
서로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서로 같이 맞춰나가면서 관계를 진전시키기 보다는 몇 번 만나보고 잘 안 맞는다 싶으면 굳이 깊이 사귈 필요가 없으니까 깊이 있는 관계로 진전되기가 무척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 둘은 서로의 취향이나 가치관, 성격등을 확인하면서 깊은 관계로 발전해 나갔다.
친구와 나를 관통하는 큰 공통점이 있다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성찰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타인의 내면까지 보게 되는 일이 있는데, 거기에서 서로 동질감을 느끼고 더 가까이하게 된 것 같다.
성격도, 취향도, 하루를 보내는 패턴도 95%정도 맞는 사람을 찾기가 정말 힘든 것 같다. 이렇게 서로 상당히 많은 부분들이 비슷하다 보니 힘든 일이 있을 때 같은 감정을 털어놔도 그 누구보다 나를 깊게 이해해줄 수 있을 거라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다. 하지만 너무 비슷한 게 많아서 깊은 공감은 가능하나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건 서로 너무 비슷한 시각이라 어려울 것 같다는 얘기를 하면서 서로 웃었다. 새로운 해결책을 세워주지는 못 하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에 관해서 깊게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축복인 것 같다며 이야기하며 웃었었다.
나의 또 다른 친구는 무엇 하나를 같이 보더라도 나와 생각하는 관점이 다 다르다. 취향도, 소비 패턴도, 인생을 대하는 자세도 전부 다른데 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이다. 그러다보니 이 친구에 관해서는 이해는 안 가지만 어떤 고민이 있을 때 서로 새로운 해결 방식을 제시해줄 수 있는 관계다. 관계가 숙성되면 숙성될수록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이 친구를 통해서 발견하기 때문에 늘 감사하고 너무 소중한 친구가 있다.
엄마에게 이 두 친구 얘기를 해주면서 삶을 살아나갈때 나와 너무 비슷한 친구 한 명과, 나와 너무 다른 친한 친구... 이렇게 두 명만 있어도 사실상 인간관계에 관해서는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나눴다. 어디 가서 그런 친구를 찾기도, 만나기도, 결국 깊이 사귀기도 참 힘든 것 같다고. 그런 친구를 사귀면 성공한 인생 아니냐는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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